4대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중국 문명, 인더스문명이다.
먼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비옥한 반달 모양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문화는 개방적이었다.
이 지역은 물물 교환 등이 이루어졌고, 종교는 현세적 다신교로서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점성술도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서 발전하였다.
천문학, 태음력, 7요제, 60진법, 24시간, 360도 등이 나타났다.
궁전과 신전 건축에 아치(arch)와 둥근 천장(dome)이 사용되었다.
이 지역은 돌이 매우 귀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벽돌로 건축하였으며,
그 벽돌을 이용하여 물을 끌어오기 위한 커다란 수로도 건설하였다.
수메르인의 문학은 주로 신화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여러 신화와 전설들은 각 도시의 건설자, 유명한 왕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 중 유명한 것이 우루크의 왕이었던 '길가메쉬'에 관한 서사시이다.
다음은 이집트 문명이다.
이 지역은 나일강 하류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지리적 위치가 폐쇄적이어서 정치·문화적 색채가 단조롭다.
그리고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의 침입없이 2000년 동안 고유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이집트는 나일강과 주변의 기름진 토양을 바탕으로 일찍 농경이 발달하였다.
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상류의 비옥한 퇴적물을 하류로 운반하는 작용을 하였으므로 나일 강변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범람은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미리 예측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이런 나일 강의 범람 때문에 태양력·기하학·건축술·천문학이 발달하였다. 이집트는 다신교를 믿었으며 신들의 수는 매우 많았다.
이집트의 국왕은 파라오라 불리웠고, 태양의 신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토목 사업에 농민과 노예를 동원하였다.
귀족들은 소수의 관료와 신관으로서 왕에게서 넓은 토지를 받아 그 세력이 강대하였다.
평민의 대부분은 부자유 농민이며 공납과 부역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피루스에 히에로글리프를 기록하였다.
또 다른 문명은 중국 문명이다.
이 문명은 중국 황허강 중류, 하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신석기시대의 하 왕조부터 시작되었고 상 왕조, 주나라 등으로 이어졌다.
하는 청동기와 문자를 사용했고, 성벽을 쌓아 정치조직을 갖추었다.
하지만 하 왕조는 기록상의 왕조로서 실존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
상은 하와 달리 실재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중국 취초의 실재 왕조이다.
황허강 중류인 은허 유역에서 도시국가로 시작했다. 이들은 신권 정치를 하였고, 갑골문자를 사용했으며, 청동기를 사용했다.
갑골문자는 한자의 원형이다.
또 태음력을 사용했고 순장 풍습이 있었다.
주는 상을 무너뜨리고 호경(현 시안) 에 도읍을 정해 화북지방을 지배했다.
그리고 봉건제를 실시하였다. 봉건제는 지방분권제로 혈연관계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종법과 예법이 확립되엇고, 천명사상과 덕치주의를 내세웠다.
마지막으로는 인더스 문명이다.
인더스 강 유역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인더스 문명의 특이점은 계획도시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도로망과 하수 시설, 목욕탕, 집회소, 곡물 창고 등이 질서 정연하게 지어져 있었다.
또 이들은 토기를 제작했고, 저울을 사용했다.
그 뒤 아리아인이 남하하며 갠지스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갠지스강은 농경이 어려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철제 농기구와 관개농업을 함으로서 농업 생산력을 향상시켰다.
이들은 소를 신성시 하고 카스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브라만교가 성립되엇고, 베다 경전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고대의 4대 문명을 모두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중국 문명을 데리고 돌아오겠다.
수정: 2024/9/28 | 출판: 202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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